세계의 중심에서 비껴난 자리에서 말하기를 시도하는 책들

1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Halberstam, Jack
현실문화
2
랭스로 되돌아가다
랭스로 되돌아가다
Didier Eribon
문학과지성사
3
빨강의 자서전 (시로 쓴 소설)
빨강의 자서전 (시로 쓴 소설)
앤 카슨
한겨레출판사
4
아르고호의 선원들
아르고호의 선원들
Nelson, Maggie
플레이타임
5
푸코: 그의 사유, 그의 인격
푸코: 그의 사유, 그의 인격
폴 벤느
리시올
6
진격하는 저급들 (퀴어 부정성과 시각문화)
진격하는 저급들 (퀴어 부정성과 시각문화)
이연숙
미디어버스
7
불쉿 잡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불쉿 잡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
민음사
8
언캐니 밸리 (실리콘 밸리, 그 기이한 세계 속으로)
언캐니 밸리 (실리콘 밸리, 그 기이한 세계 속으로)
애나 위너
카라칼

정상과 규범, 성공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정제된 언어의 표면을 벗겨내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균열의 소리를 포착한다. 이 묶음은 바로 그 틈에서 태어난 사유의 연대이자, 실패와 변주를 미학으로 전환한 기록이다. 잭 핼버스탬의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은 이 세계에서의 ‘실패’를 새로운 가능성의 언어로 번역한다. 효율과 성취의 문법을 거부하는 퀴어한 삶의 태도—우회, 느림, 비생산, 유희—는 오히려 창조의 다른 원리를 드러낸다. 실패는 좌절이 아니라, 제도적 성공의 시간을 탈주하는 예술적 리듬이 된다.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돌아감’이라는 행위를 통해 퀴어성과 계급의 교차를 탐문한다. 파리의 지식인이 된 저자가 고향 랭스로 돌아가며 맞닥뜨리는 것은, 부끄러움과 소외, 그리고 결코 완전히 떠날 수 없는 자신의 흔적이다. 에리봉의 회귀는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가장 급진적인 형태다.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은 시와 소설, 신화와 사유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언어의 단단한 형식을 녹이며, 사랑과 결핍의 고통을 불안정한 문장들로 새긴다. 카슨에게 문장은 결코 닫히지 않는 상처의 표면이고, 그 틈에서 우리는 서사 아닌 시로서의 존재를 배운다. 매기 넬슨의 《아르고호의 선원들》은 끊임없이 변하는 사랑의 항해록이다. 트랜스젠더 연인과 함께 꾸린 가족의 일상 속에서, 넬슨은 관계와 정체성의 경계를 재정의한다. 아르고호의 선원들처럼 우리는 한순간도 같은 존재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 변화를 견디는 일이야말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폴 벤느의 《푸코: 그의 사유, 그의 인격》은 지식인의 초상을 다시 쓴다. 푸코의 철학은 단지 사유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의 형식이자 끊임없는 자기 변형의 실험이다. 벤느의 푸코는 ‘앎의 몸’을 가진 사람—사유가 삶으로 이어진 드문 예이다. 이연숙의 《진격하는 저급들》은 퀴어 부정성의 시각문화 비평서다. 저자는 ‘저급함’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저항의 감각으로 전환한다. 더럽고, 어설프고, 불편한 것들—그 모든 것들이야말로 새로운 감수성과 미학의 출발점이 된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은 무의미한 노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침식되는지를 폭로한다. 그러나 이 절망의 묘사는 동시에 퀴어한 가능성의 은유이기도 하다. 효율과 생산성의 바깥에서 의미를 다시 구성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현대의 ‘실패 예술’이다. 마지막으로 애나 위너의 《언캐니 밸리》는 실리콘밸리의 빛나는 표면 아래 숨은 불안을 기록한다. 기술과 자본이 만들어낸 유토피아에서 한 여성 개발자가 느끼는 소외는, 퀴어함과 다르지 않은 이방성의 감각으로 번진다. 이 책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같은 리듬으로 진동한다. 정상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 삶,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존재하는 인간, 실패를 통해 더 넓은 감각을 배우는 몸. 그것이 이 묶음이 가리키는 곳이다. 이 책들을 읽는 일은 결국, 성공의 반대편에서 세계를 다시 배우는 일이다. 실패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하나의 문체다.